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 평소에는 그냥 어른들이 하시는 소리인 줄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 경기도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우연히 길을 잘못 들었지 뭐예요. 그러다 정말 우연히 마주친 풍경 하나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네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운동장,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묵묵히 지키고 선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 바로 폐교가 된 어느 초등학교의 풍경이었어요.
여러분은 폐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사실 저는 조금 쓸쓸한 느낌이 먼저 들거든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그곳에 이제는 바람 소리만 들린다는 게 참 묘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텅 빈 운동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어요. 바로 학교가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보호수'로 지정된 커다란 나무였죠.
나무가 기억하는 아이들의 이름표
나무 아래 가까이 다가가 보니까 나무 둘레가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성인 서너 명이 팔을 맞잡아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 이 정도면 최소 몇 백 년은 이 자리를 지켰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나무는 이 학교가 처음 지어질 때도, 그리고 마지막 졸업생이 교문을 나설 때도 다 지켜봤겠구나 하고요.
사실 학교에 있는 나무들은 그냥 심어진 게 아니잖아요. 예전 어르신들은 마을에서 가장 기운이 좋고 든든한 나무가 있는 곳에 터를 잡고 학교를 세웠다고 해요. 아이들이 그 기운을 받아서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죠. 제가 본 그 느티나무도 아마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의 든든한 그늘막이었을 거예요. 체육 시간 끝나고 땀 뻘뻘 흘리며 달려온 아이들이 그 아래 털썩 주저앉아 헉헉대던 모습,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요? 크, 이게 진짜 학교의 감성인데 말이에요.
요즘처럼 모든 게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이렇게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키는 존재를 만나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에요. 주변 건물들은 낡아서 허물어지고 학교 문은 닫혔지만, 나무는 여전히 해마다 새잎을 틔우고 있더라고요. "나는 아직 여기 있어, 잊지 마."라고 조용히 외치는 것 같아서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답니다.
잊혀가는 것들이 주는 위로
솔직히 말해서 요즘 신축 학교들은 세련되고 시설도 정말 좋잖아요? 에어컨 빵빵하고 인조 잔디 깔린 운동장, 부럽긴 하죠. 하지만 이런 오래된 폐교의 나무가 주는 묵직한 울림은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아요. 나무 기둥에 손을 딱 대보니까 거친 껍질의 촉감이 느껴지는데, 와 이건 진짜 반칙이다 싶을 정도로 포근하더라고요. 마치 "괜찮아, 다 알고 있어."라고 다독여주는 할아버지 손등 같았거든요.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 나무는 말 그대로 '역사의 산증인'이잖아요.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전쟁을 겪고, 또 보릿고개를 넘어 아이들이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등교할 때까지 그 모든 순간을 잎사귀 하나하나에 다 새겨넣었을 거예요. 이런 게 진짜 살아있는 역사 아닐까요? 교과서에 나오는 딱딱한 연도 숫자보다, 이 나무 한 그루가 간직한 사연이 훨씬 더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더라고요. 학교가 폐쇄되고 관리가 소홀해지면 이 귀한 보호수들도 상처 입기 쉽거든요. 다행히 제가 간 곳은 지역 주민들이 가끔 와서 살피시는지 주변이 아주 엉망은 아니었지만, 전국 곳곳에 버려지다시피 남겨진 보호수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 안타까워요. 학교는 사라져도 나무는 그 마을의 뿌리인데 말이죠.
우리가 다시 학교를 찾는 이유
여러분도 혹시 주말에 시간이 나면 지도에서 근처 폐교를 한번 찾아보세요. 요즘은 폐교를 개조해서 갤러리나 카페로 만든 곳도 많지만, 가끔은 이렇게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남은 곳이 더 좋을 때가 있어요. 낡은 철봉에 녹이 슬어 있고 교실 창문 너머로 먼지가 쌓인 풍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서 있는 보호수를 보면 묘한 생명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나무 밑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바람이 부는데,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꼭 아이들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리더라고요. "야, 너 이번에 시험 잘 봤어?", "축구하러 가자!" 이런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서 혼자 피식 웃었네요. 혼자 떠난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나무 덕분에 잃어버렸던 동심을 한 조각 찾은 기분이었어요.
세상은 자꾸 새것을 찾고 낡은 건 버리라고 말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오래된 것들이 주는 위로가 더 클 때가 있는 법이죠. 사라진 학교의 역사를 홀로 짊어지고 있는 저 나무를 보면서, 저도 조금은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여러분도 마음이 복잡할 때 이런 든든한 나무 한 그루 만나러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분명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예요.
마무리
진짜 신기하죠? 나무 하나가 사람 마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게요. 다음에는 도시락이라도 싸 들고 가서 그 나무 그늘에서 책 한 권 읽다 오고 싶네요. 혹시 여러분도 나만 알고 있는 멋진 나무가 있는 장소가 있다면 슬쩍 알려주세요.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거든요.
전문적인 학술/정보 사이트
국가유산청 (heritage.go.kr): 전국의 보호수 지정 현황 및 천연기념물 정보를 상세히 확인할 수 있는 공공 기관 사이트입니다.
산림청 (forest.go.kr): 나무의 보존 및 관리, 그리고 숲의 가치에 대한 전문적인 자료와 정책을 제공합니다.
한국임업진흥원 (kofpi.or.kr): 나무의 수령 측정법이나 병충해 관리 등 기술적인 학술 정보를 얻기에 적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