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근길에 발에 툭 치이는 노란 은행잎 보셨나요? 아니면 그 특유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코를 찔끔 쥐고 피해 가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나무 하면 그냥 '가을에 예쁘지만 냄새나는 나무' 정도로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이 녀석들 정체를 알고 나면 길 가다 마주칠 때마다 슬쩍 고개 숙여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에요.
은행나무가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말,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셨죠? 근데 그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더라고요. 무려 2억 7천만 년 전 고생대 말기부터 지구상에 나타났대요.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기도 전부터 살았다는 건데... 진짜 대단하지 않나요?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완성된 형태로 지구를 지키고 있었던 셈이죠.
혼자서 버텨온 외로운 시간들
보통 생물들은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서 진화를 하거나 아니면 멸종하잖아요. 그런데 은행나무는 참 고집쟁이예요. 수억 년 전 모습이랑 지금이랑 거의 차이가 없거든요. 사실 식물 분류학적으로 봐도 은행나무는 아주 독특해요. '은행나무문 은행나무강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에 딱 이 종 하나밖에 안 남았대요. 쉽게 말해서 일가친척이 다 멸종하고 혼자 남은 외동아들 같은 존재랄까요.
제가 예전에 양평 용문사에 있는 천년 넘은 은행나무를 보러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나무 앞에 서 있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바람에 잎이 사르르 떨리는 소리가 꼭 "나 여기 오래 있었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수천 년을 한자리에서 버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전쟁이 나고 나라가 바뀌는 그 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본 그 나무를 보면서 제 고민은 참 사소해 보이기도 했고요.
벌레도 절레절레, 은행나무의 철벽 방어
여러분, 산에 가면 나무들 잎사귀가 벌레 먹어서 구멍 숭숭 뚫린 거 자주 보시죠? 그런데 은행나무 잎은 유독 깨끗해요. 왜 그런가 했더니 얘네들이 자기 몸을 지키는 독보적인 화학 무기를 갖고 있더라고요. '빌로바라이드'나 '징코라이드' 같은 성분인데, 이게 곰팡이나 바이러스, 벌레들한테는 치명적이래요.
심지어 불에도 엄청 강해요. 껍질이 두껍고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웬만한 산불에도 잘 안 타거든요. 예전에 큰불이 났을 때 다른 나무들은 다 타 죽어도 은행나무만은 살아남았다는 기록도 꽤 많죠. 진짜 생존력 하나는 반칙이다 싶을 정도예요. "나 건드리지 마!"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느낌이랄까.
아, 그리고 그 고약한 냄새! 사실 그것도 전략이에요. 겉껍질에 있는 '비오볼'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게 동물들이 열매를 함부로 못 먹게 막아주는 역할을 하죠. 인간 입장에서는 코를 막게 되지만, 나무 입장에서는 소중한 씨앗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인 셈이에요. 알고 나니까 그 냄새도 조금은 이해가 가시나요? 사실 저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긴 하지만요. ㅋㅋ
사랑도 전략적으로, 암수의 거리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는 거 아시죠? 이게 참 로맨틱하면서도 철저해요. 수나무가 꽃가루를 날리면 바람을 타고 암나무에게 전달되는데, 여기서 정말 신기한 게 있어요. 식물인데도 동물처럼 '정자'를 만든다는 거예요. 씨배양체 안에서 정자가 스스로 헤엄쳐서 수정을 하거든요. 1896년에 일본의 한 학자가 이걸 처음 발견했을 때 식물학계가 발칵 뒤집혔다는데, 그럴만하죠? 식물이 헤엄치는 세포를 가졌다는 게 진짜 신기하잖아요.
근데 요즘 도심 가로수들은 암나무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하죠. 열매 냄새 민원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지자체에서 수나무만 골라 심으려고 DNA 검사까지 한대요. 어찌 보면 인간 편의 때문이긴 한데, 나무들 입장에서는 짝꿍을 못 만나게 되는 거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우리가 은행나무를 지켜야 하는 이유
은행나무는 사실 야생에서는 거의 멸종 위기종이라는 거 아세요? 지금 우리가 보는 은행나무들은 대부분 사람이 심고 가꾼 것들이에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들을 보면 정말 경외감이 들 정도죠.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생명력이 우리 곁에 이렇게 흔하게 있다는 게 어쩌면 엄청난 행운일지도 몰라요.
공기 정화 능력도 탁월해서 매연 가득한 도심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주는 기특한 녀석들. 가을마다 우리에게 황금빛 장관을 선물해 주는 이 노신사들에게 이번 가을에는 고맙다는 마음을 좀 가져봐야겠어요. 비록 발밑은 조금 조심해야겠지만요!
여러분은 집 근처에 기억에 남는 오래된 나무가 있나요? 내일 나가는 길에 가로수를 한번 유심히 보세요. 어쩌면 수백 년을 버텨온 동네의 산증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마무리
다음에 또 재밌고 사람 냄새 나는 자연 이야기 들고 올게요! 혹시 궁금한 나무나 식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같이 수다 떨듯 알아가 봐요! 여러분의 동네엔 어떤 은행나무가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댓글로 알려주실래요?
전문적인 학술/정보 사이트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www.nature.go.kr)
유네스코 세계유산 센터 (whc.unesco.org)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 - Ginkgo biloba 관련 연구 데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