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숨은 보호수 탐방: 도심 속 빌딩 숲을 지키는 노거수들

 서울이나 경기권 살면서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만 보고 살다 보면 가끔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잖아요. 저만 그런가요? 매일 똑같은 회색 풍경 속에서 출퇴근하다가, 문득 길가에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걸 발견하면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마치 이 삭막한 도시의 진짜 주인은 내가 아니라 저 나무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오늘은 제가 최근에 꽂힌 '수도권 보호수 탐방'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해요. 보호수라고 하면 왠지 등산복 차려입고 멀리 시골 오지로 가야 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우리 집 앞, 혹은 회사 근처 골목길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노거수들이 정말 많거든요.


800년을 버틴 강남의 자존심, 신사동 은행나무

제일 먼저 가본 곳은 강남 한복판이었어요. 신사역 인근 골목을 걷다 보면 진짜 '헉' 소리 나는 나무가 하나 있거든요. 수령이 무려 8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인데, 이게 참 골 때리는(?) 광경이에요. 주변은 온통 세련된 카페랑 성형외과, 오피스 빌딩들인데 그 좁은 골목 사이에 엄청나게 굵은 밑동을 가진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거든요.

이 나무 아래 잠시 서서 위를 올려다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선 시대에도, 일제강점기에도, 그리고 이 동네가 강남 개발로 천지개벽할 때도 이 나무는 여기서 다 지켜보고 있었겠구나 싶어서요. 사실 나무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옆에서 건물을 짓든 말든 그냥 허허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을에 가면 노란 잎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장관이에요. 근처 직장인들이 테이크아웃 커피 들고 이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쉬는 걸 봤는데, 그 모습이 진짜 도심 속 오아시스 같았달까요. 여러분도 신사동 갈 일 있으면 쇼핑만 하지 말고 이 어르신 한번 뵙고 오세요. 기운이 확 달라요.


아파트 단지 속의 비밀 정원, 수원 영통 느티나무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건 수원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느티나무예요. 아니, 나무가 먼저 있었고 아파트가 나중에 들어선 거겠지만요. 여기는 진짜 동네 주민들 사랑을 듬뿍 받는 느낌이 팍팍 나요. 나무 주변으로 데크도 잘 짜여 있고,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바둑 두시는 모습이 너무 정겹더라고요.

제가 갔을 때는 여름 끝자락이었는데,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게 너무 따사로웠어요. 50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나무의 그늘은 에어컨 바람이랑은 차원이 다르거든요. 피부에 닿는 공기 자체가 훨씬 쫀득하고 시원하달까.

근데 이 나무, 몇 년 전에 태풍 때문에 가지가 좀 부러지는 시련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마을 분들이 진짜 정성으로 치료해주고 보살펴서 지금은 다시 웅장한 모습을 되찾았는데, 그 사연을 들으니까 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이 동네의 공동체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게 바로 '시간이 주는 선물' 아닐까요?


서울 시내 한복판, 재개발의 파도 속을 지킨 회화나무

종로 쪽으로 넘어오면 또 다른 매력의 노거수들을 만날 수 있어요. 빌라촌 좁은 계단 끝이나 오래된 한옥 담벼락 너머로 툭 튀어나온 회화나무들 말이죠. 회화나무는 예전부터 '선비 나무'라고 불렸잖아요. 그래서인지 도심 한복판에 있어도 특유의 선비 같은 단아한 멋이 있어요.

한번은 서대문 근처를 걷다가 빌딩 사이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보호수를 봤는데, 마음이 좀 짠하더라고요. 사방이 콘크리트로 막혀서 뿌리 내릴 곳도 마땅치 않아 보이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초록색 잎을 틔워내는 게 참... 사람 사는 것도 저 나무랑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힘들어도 버티다 보면 결국 내 자리를 지키게 되는 거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스마트폰 보느라 바빠서 고개를 안 들어서 그렇지,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우리 곁엔 수백 년 된 역사책들이 숨 쉬고 있는 셈이에요. 멀리 여행 갈 필요 있나요? 이런 게 바로 진짜 로컬 여행이죠.


보호수 탐방,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혹시 요즘 "아, 삶이 너무 팍팍하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하신 분들 계신가요? 그럼 주말에 시간 내서 가까운 보호수 지도를 한번 찾아보세요.

그 거대한 밑동에 손 한번 살짝 대보고(물론 나무가 아프지 않게 매너는 지켜야겠죠?), 바람에 잎사귀 부딪히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좀 차분해져요. 800년 산 나무 앞에서 내가 고민하는 몇 달, 몇 년의 문제는 정말 찰나처럼 느껴지거든요.

크~ 이게 바로 '나무멍'의 힘 아니겠어요? 요즘 유행하는 불멍, 물멍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나무멍'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여러분 집 근처에도 분명 있을 거예요. "어? 저 나무는 왜 이렇게 커?" 싶은 녀석이 있다면 백이십 퍼센트 보호수일 확률이 높거든요. 이번 주말에는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우리 동네를 지켜주는 이 든든한 이웃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분명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게 될 거예요.


전문적인 학술/정보 사이트

  •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노거수 데이터베이스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포털 (공원 및 녹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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